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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코보로쇼(太公望呂尚)

타이코보로쇼(太公望呂尚)는 실재한 인물로 (시쇼후(師尚父)라고도 불리워짐), 기원전 11세기에 후일 슈(周)왕조를 건국한 분(文)왕과 그 아들 부(武)왕의 군사가 되었다. (그 왕조 세이슈(西周)는 1122-771BC 까지 계속되었다)
긴 세월동안에 타이코보에 관한 많은 전설이 생겨났다. 그 이야기는 여러 서적에 남겨졌다.


쇼(商)왕조 최후의 왕인 츄(紂)왕은 전제적으로 타락한 왕이었다. 밤낮으로 애첩인 다츠키(妲己)와 놀아나며, 무자비하게 많은 하인과 그의 치세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을 처형했다.


로쇼(呂尚)는 군사전문가로, 쇼(商)왕을 무너뜨리기 위해 언젠가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스이(渭水)의 지류(현재 시안(西安)근교)에서, 여든 살이 될 때 까지 조용히 낚시를 하면서 기다렸다.


슈(周)나라의 분(文)왕 (당시는 슈나라의 영주) 가 우연히 낚시를 하고 있는 로쇼(呂尚)를 발견했다. 분왕은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유훈을 지키며, 유능한 인물을 찾고 있었다. 사실, 그의 할아버지, 즉, 슈나라 대공으로부터 언젠가 슈나라의 통치변혁을 도와줄 현인 한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들었다. 로쇼를 봤을 때, 분왕은 이 남자는 비범한 남자임에 틀림없다고 한눈에 알아보았다. 분왕은 로쇼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백발의 낚시꾼은 실제로 민완 (敏腕)한 정치사상가, 군사전략가라고 인정했다. 왕은『 이 남자야 말로 할아버지가 애타게 기다렸던 남자임에 틀림없다』고 느꼈다. 왕은 로쇼를 자신의 마차에 태워서, 관에 데리고 돌아가 대신으로 임명하고, 타이코보(太公望)(슈나라 대공이 대망하던 남자) 의 칭호를 주었다.


그의 시대로부터 상당히 후에 쓰여진 타이코보로쇼(太公望呂尚)의 생활을 기록한 책에는, 그는 사람들이 번영했을 때 만이 그 나라가 강력해 질 수 있다고 항상 주장했다고 전한다. 만일 백성이 가난한 채, 치세자가 사치를 한다면, 통치는 길게 계속되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 통치의 대원칙은 그 나라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과세와 부역을 적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각에 따르는 것으로, 분(文)왕은 슈(周)나라를 상당히 빨리 풍족하고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분(文)왕이 서거한 후, 그 아들 부(武)왕이 슈(周)나라 영주의 자리를 계승하고, 쇼(商)왕을 무찌를 군대를 보내려고 결의했다. 하지만, 타이코보로쇼(太公望呂尚)는 부왕을 제지하며 말했다. 『 내가 한케이(磻渓) 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을 때, 나는 만약 성공을 바란다면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내의 진리를 배웠다. 우리들은 슈나라의 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더 적절한 시기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 머지않아, 억압이 심한 탓으로 쇼나라의 백성들은 아무도 전혀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부(武)왕과 타이코보로쇼는 통치자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이 바로 공격의 시기라고 결정했다. 피비릿내 나는 싸움이 보쿠야(牧野) ( 쇼나라의 수도・인(殷)에서 35 km, 현재의 코우난쇼(河南省)의 안요우(安陽)) 에서 일어났다.


쇼(商)왕은 스스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안에 몸을 던져 멸했다. 부(武)왕과 그 후계자는 슈(周)왕조로서 전중국의 통치를 확립했다. 타이코보로쇼(太公望呂尚)는 사이(斉)(현 산토우쇼(山東省)) 의 영주가 되어, 그의 통치 아래, 생선과 염자원을 기초로 한 국토개발과 근린과의 교역으로 번영했다.


일본의 소설가, 미야기타니마사미츠(宮城谷昌光)는 1998년, 타이코보로쇼(太公望呂尚)의 소설을 발표했다. 그의 소설 안에서, 타이코보로쇼는 나이든 수염을 기른 어부가 아니라, 젊은사람으로 그려졌다. 그는 중국의 전 국토를 활발히 걸어다니며, 각지의 많은 영주와 활발히 논의를 하여, 네트워크를 만들어 지지를 얻어냈다. 끝내 부(武)왕과 젊은 타이코보로쇼는 쇼(商)왕을 무너뜨렸다.
용기와 감동을 주는 소설이며, 실제로 큰 업적을 중국사에 남긴 타이코보로쇼는 노령이 아니며, 시대의 앞을 보는 감성과 지혜와 네트워크와 행동력을 겸비한 젊은이 였다고 믿는다. 소설 속에서 타이코보로쇼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국가 로서의 사이(斉) ( 함께 라는 의미를 가짐) 를 탄생시켰다. 함께 살자』고 말하고 있다. 동아시아에 있어서, E-기술을 이끌어 나갈 타이코보와 같은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나타나기를 기원한다.

쇼카손주쿠(松下村塾)